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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문서 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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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 감사를 드리며 계속해서 전도출판사를 위해 기도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성경 인물 탐구시리즈 - 사무엘

  • 소비자가 10,000원
  • 저자 A. J. 히긴스 
  • 페이지수 240 
  • 출간일 2026-9-30 
  • 판형 신국판 150*225 
  • 판매가 9,000 원
  • 배송비배송지역에 따라 책정 (3만원 이상 무료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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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서문



왜?

선지자 사무엘은 아마도 구약성서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인물일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사무엘을 “선지자 사무엘까지”(행 13:20)라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의 큰 전환점으로 언급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99편 6절에서 사무엘을 모세와 아론과 나란히 두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주님께서도 예레미야 15장 1절에서 고상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표현을 사용하셔서 사무엘을 모세와 연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이전 세기의 작가 중 한 명인 페러데이(W.W.Fereday)는 그를 “하나님의 비상사태 대응자”(God’s Emergency Man)라고 불렀습니다.

나실인, 민족의 회복자, 레위인, 마지막 사사이자 첫째로 선지자 직무를 맡은 자, 왕을 세우는 자, 왕을 폐위시키는 자까지, 그의 직무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며 구약성경에서 그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합니다. 마지막 사사이자 첫 선지자로서 그리고 왕조를 연 자로서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서도 전환점이 되는 핵심 인물입니다.

그러나 왕을 세우는 자들이나 사사들, 나실인들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3,0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의 삶과 신념, 품성을 존경할지 모르지만, 사무엘을 연구함으로써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전에 기록된 것들”(롬 15:4)의 유익과 그것이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경계”(고전 10:11)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뛰어나기에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으며 우리의 지능과 능력이 그들보다 수천 년 앞서 있다고 가정하는 시대적 오만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기술 면에서 발전했고 정보와 견해의 홍수에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혜는 많은 사람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고조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의 웅변적이고 통찰력 있는 탄식(욥기 28장)을 통해 지혜가 얼마나 얻기 어렵고 귀한지,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히 구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혜’이며, 그 교훈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지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무엘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 그는 선지자 직분을 맡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선지자를 일으키셔야 했을까요?
● 자녀 양육에 관한 교훈 – 잘한 점과 못한 점
● 책 속에 보석처럼 흩어져 있는, 삶의 원리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리
● 기도의 교훈 - 한 여성, 한 남성, 한 국가
● 봉사를 위한 준비 - 작고 하찮은 아이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는가?
● 권력 - 권력의 선용과 남용, 그리고 이양
● 하나님을 위한 당신의 봉사를 찾는 길
●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진할 뿐 아니라 그 실패를 실제로 활용하는 하나님의 목적

어떻게?

사무엘서를 한 절씩 주해하는 대신, 이어지는 장에서는 때때로 책 일부를 다루게 될 것이며, 다른 장에서는 주제를 선택하여 사무엘상 전반에 걸쳐 추적할 것입니다. 때로는 사무엘의 삶이 나중에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볼 때 사무엘의 삶보다 조금 더 확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삶을 다루게 될 다른 분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우리의 의도는 아니지만,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데 사무엘이 한 역할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삶에 대해 기술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사무엘에 대한 결례일 것입니다.

사무엘의 이름을 지닌 구약성서의 두 책의 저자가 누구인가는 논란과 추측의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사무엘상이 끝나기 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삼상 25:1) 그가 사무엘서 전체의 저자일 수는 없음이 당연하고, 사무엘하의 저자일 수 없다는 것은 더더욱 확실합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무엘상하는, 열왕기상하가 한 권인 것처럼 한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칠십인역(Septuagint)과 제롬의 라틴어역 성경인 불가타(Vulgate)에서는 이 네 권의 책이 왕국의 책들(The Books of the Kingdom)로 불립니다. 따라서 알려지지 않은 한 작가(에스라?)가 기록을 수집하여 우리를 위해 편집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영적 교훈을 배우는 데 저작권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무엘상을 중심으로 성경의 다른 곳을 가끔 둘러보며 성령님이 어떻게 사무엘을 영화롭게 하셨는지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독특하고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사사요, 처음으로 선지자의 직분을 맡은 자입니다(아브라함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으나 같은 의미에서는 아니었다). 사무엘 이전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소통하시는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직은 실패했습니다. 세습은 악용과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제사장직을 제쳐두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가족 관계로 직위에 오르지 못한 남자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새롭게” 나올 것이며 민족을 향한 그분의 음성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들 중 첫째 사람이었습니다. 다시는 제사장 직분이 하나님께서 그 민족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고라 자손으로서 레위인이었으며, 그는 또한 제사장의 성격으로 행동했습니다. 이런 사무엘의 역할 안에서 장차 그 백성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재판관으로 오실 다른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이 모든 직분은 통합될 것이며 그분은 제사장으로서 그분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나약함과 실패는 결코 그분의 보좌와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분에게는 후계자가 필요 없습니다.

사무엘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그 땅 북쪽에 아마도 사무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나실인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실인 신분은 더럽혀졌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위한 구별과 성별 된 삶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포도주, 여자, 블레셋의 오락 등 주변의 모든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실인의 신분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사무엘의 삶 모든 양상과 국면은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자라는”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고, 실로의 오염 속에서도 그가 어떻게 보호받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과 그가 엘리에게 전한 엄숙한 메시지 이후, 그는 우리가 언약궤를 추적하여 이스라엘에서부터 다곤의 집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약궤의 운명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사무엘상하에서 반복될 근본적인 주제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곧 인간의 흥망성쇠, 그리고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그 실패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누군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와 신정(그분의 통치)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분을 폐위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을 온 나라에 회개를 불러일으켜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다시 한번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1,000년 후의 대선지자 기간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기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간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무엘이 뿔을 들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예를 깨달았을까요? 그는 다윗을 구별하여 다윗의 씨를 왕좌에 앉힘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비약적인 도약을 이루고 있는지 깨달았을까요? 그는 이새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the least)에게 기름을 붓는 그 특별한 행위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게 될 “더 큰 자”(the Greater)를 예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통찰력의 정도를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그가 돌이켜본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권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왕을 세우는 자(킹메이커)”였습니다. 이 용어는 원래 장미 전쟁 당시 ‘킹메이커 워릭’이라는 이름으로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사용은 1595년이지만, 2500년보다 훨씬 이전에 사무엘은 최고의 “킹메이커”가 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여, 깊은 존경과 경외심을 품고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서 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다 알고 있음을 상기시키지만, 그 누구도 그를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찬사이자 간증인지요! 인생의 여정과 봉사의 끝자락에서 그와 같은 마무리를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언제?

이야기 자체를 시작하기 전에, 시대의 배경을 고려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때는 악명 높은 사사 시절,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와 ‘현재’의 관련성을 입증할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충분히 제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연대기에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정확히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사무엘서는 사무엘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다윗의 통치가 완성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케일(Keil)과 델리치(Delitzsch)는 사무엘 상하에서 다루는 기간이 주전 1,140부터 1,015년까지의 약 125년에 달할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상의 사건은 삼손이 사사직을 수행하고 공을 세운 시기와 일치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단(Dan)에서는 강한 남자의 실패가 있었지만, 라마다임소빔에서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독실하고 경건한 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살고 있었다면 의심할 바 없이 우리의 시선은 단 지파와 삼손에게 쏠렸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자였으니까요. 블레셋의 원수에 대한 승리가, 실제로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사는 임신하지 못하고 비난받는 한 여인의 기도에서 비롯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서?

사무엘에 관한 고찰은 우리를 여러 곳으로 데려갈 것이며, 그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에 비추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닐지 모르지만, 실로, 길갈, 에벤에셀, 미스바, 벧엘 같은 곳은 저마다의 추억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어떤가요? 사사기 17-19장과 룻기 1장의 어두운 역사는 사사들의 흐름을 끊고 등장한 보아스의 이야기로 부분적인 여명이 비췄으며, 유다 베들레헴에서 다윗이 등장함으로 어둠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가 전진할 때, 우리 각자가 성령님에 겸손히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자에게는 기록한 내용이 유익한 것이 되기를, 독자에게는 그 읽은 내용이 유익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교훈들은 분명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기를!
서평


목차


저자 소개 / 4
제1장 - 서문 / 5
제2장 - 사무엘과 그의 부모 / 14
제3장 - 사무엘과 그 사람들 / 37
제4장 - 사무엘과 그 막간 / 58
제5장 - 사무엘 그 선지자 / 73
제6장 - 사무엘과 그의 준비 / 93
제7장 - 사무엘과 그 섬김의 길 / 113
제8장 - 사무엘과 자녀양육 / 134
제9장 - 사무엘과 원칙들 / 155
제10장 - 사무엘과 기도 / 178
제11장 - 사무엘과 권력 / 194
제12장 - 그림, 예고, 약속, 원칙, 예언적 살피기 / 213
제13장 - 사무엘과 후기 / 223

약력
성경 인물 탐구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 인물 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What the Bible Teaches” 시리즈(횃불주석 시리지-전도출판사 역간중)에서 잠언 주석을 작성한 A. J. 히긴스가 집필했다.

A. J. 히긴스(Higgins)와 그의 아내 룻(Ruth)은 미국 뉴저지주 해돈 하이츠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두 딸과 두 손자를 두고 있다. 저자는 21세에 구원을 받은 후 곧바로 교회 모임에 영접되었다.

그는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반 진료 의사로서의 업무를 계속해 왔다. 그와 그의 아내는 뉴저지주 바링턴에서 모이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리더십 책임을 나누고 있다.

그의 사역은 북아메리카 전역, 영국, 아시아의 여러 국가로 확장되었다. 그의 사역의 부담은 젊은 신자들과 교회 진리에 있다. 그는 북미의 모임 출판사 “Truth and Tidings”(진리와 소식)에 기고해 왔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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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서문



왜?

선지자 사무엘은 아마도 구약성서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인물일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사무엘을 “선지자 사무엘까지”(행 13:20)라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의 큰 전환점으로 언급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99편 6절에서 사무엘을 모세와 아론과 나란히 두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주님께서도 예레미야 15장 1절에서 고상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표현을 사용하셔서 사무엘을 모세와 연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이전 세기의 작가 중 한 명인 페러데이(W.W.Fereday)는 그를 “하나님의 비상사태 대응자”(God’s Emergency Man)라고 불렀습니다.

나실인, 민족의 회복자, 레위인, 마지막 사사이자 첫째로 선지자 직무를 맡은 자, 왕을 세우는 자, 왕을 폐위시키는 자까지, 그의 직무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며 구약성경에서 그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합니다. 마지막 사사이자 첫 선지자로서 그리고 왕조를 연 자로서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서도 전환점이 되는 핵심 인물입니다.

그러나 왕을 세우는 자들이나 사사들, 나실인들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3,0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의 삶과 신념, 품성을 존경할지 모르지만, 사무엘을 연구함으로써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전에 기록된 것들”(롬 15:4)의 유익과 그것이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경계”(고전 10:11)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뛰어나기에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으며 우리의 지능과 능력이 그들보다 수천 년 앞서 있다고 가정하는 시대적 오만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기술 면에서 발전했고 정보와 견해의 홍수에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혜는 많은 사람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고조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의 웅변적이고 통찰력 있는 탄식(욥기 28장)을 통해 지혜가 얼마나 얻기 어렵고 귀한지,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히 구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혜’이며, 그 교훈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지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무엘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 그는 선지자 직분을 맡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선지자를 일으키셔야 했을까요?
● 자녀 양육에 관한 교훈 – 잘한 점과 못한 점
● 책 속에 보석처럼 흩어져 있는, 삶의 원리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리
● 기도의 교훈 - 한 여성, 한 남성, 한 국가
● 봉사를 위한 준비 - 작고 하찮은 아이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는가?
● 권력 - 권력의 선용과 남용, 그리고 이양
● 하나님을 위한 당신의 봉사를 찾는 길
●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진할 뿐 아니라 그 실패를 실제로 활용하는 하나님의 목적

어떻게?

사무엘서를 한 절씩 주해하는 대신, 이어지는 장에서는 때때로 책 일부를 다루게 될 것이며, 다른 장에서는 주제를 선택하여 사무엘상 전반에 걸쳐 추적할 것입니다. 때로는 사무엘의 삶이 나중에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볼 때 사무엘의 삶보다 조금 더 확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삶을 다루게 될 다른 분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우리의 의도는 아니지만,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데 사무엘이 한 역할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삶에 대해 기술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사무엘에 대한 결례일 것입니다.

사무엘의 이름을 지닌 구약성서의 두 책의 저자가 누구인가는 논란과 추측의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사무엘상이 끝나기 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삼상 25:1) 그가 사무엘서 전체의 저자일 수는 없음이 당연하고, 사무엘하의 저자일 수 없다는 것은 더더욱 확실합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무엘상하는, 열왕기상하가 한 권인 것처럼 한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칠십인역(Septuagint)과 제롬의 라틴어역 성경인 불가타(Vulgate)에서는 이 네 권의 책이 왕국의 책들(The Books of the Kingdom)로 불립니다. 따라서 알려지지 않은 한 작가(에스라?)가 기록을 수집하여 우리를 위해 편집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영적 교훈을 배우는 데 저작권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무엘상을 중심으로 성경의 다른 곳을 가끔 둘러보며 성령님이 어떻게 사무엘을 영화롭게 하셨는지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독특하고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사사요, 처음으로 선지자의 직분을 맡은 자입니다(아브라함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으나 같은 의미에서는 아니었다). 사무엘 이전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소통하시는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직은 실패했습니다. 세습은 악용과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제사장직을 제쳐두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가족 관계로 직위에 오르지 못한 남자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새롭게” 나올 것이며 민족을 향한 그분의 음성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들 중 첫째 사람이었습니다. 다시는 제사장 직분이 하나님께서 그 민족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고라 자손으로서 레위인이었으며, 그는 또한 제사장의 성격으로 행동했습니다. 이런 사무엘의 역할 안에서 장차 그 백성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재판관으로 오실 다른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이 모든 직분은 통합될 것이며 그분은 제사장으로서 그분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나약함과 실패는 결코 그분의 보좌와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분에게는 후계자가 필요 없습니다.

사무엘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그 땅 북쪽에 아마도 사무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나실인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실인 신분은 더럽혀졌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위한 구별과 성별 된 삶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포도주, 여자, 블레셋의 오락 등 주변의 모든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실인의 신분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사무엘의 삶 모든 양상과 국면은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자라는”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고, 실로의 오염 속에서도 그가 어떻게 보호받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과 그가 엘리에게 전한 엄숙한 메시지 이후, 그는 우리가 언약궤를 추적하여 이스라엘에서부터 다곤의 집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약궤의 운명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사무엘상하에서 반복될 근본적인 주제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곧 인간의 흥망성쇠, 그리고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그 실패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누군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와 신정(그분의 통치)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분을 폐위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을 온 나라에 회개를 불러일으켜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다시 한번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1,000년 후의 대선지자 기간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기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간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무엘이 뿔을 들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예를 깨달았을까요? 그는 다윗을 구별하여 다윗의 씨를 왕좌에 앉힘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비약적인 도약을 이루고 있는지 깨달았을까요? 그는 이새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the least)에게 기름을 붓는 그 특별한 행위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게 될 “더 큰 자”(the Greater)를 예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통찰력의 정도를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그가 돌이켜본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권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왕을 세우는 자(킹메이커)”였습니다. 이 용어는 원래 장미 전쟁 당시 ‘킹메이커 워릭’이라는 이름으로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사용은 1595년이지만, 2500년보다 훨씬 이전에 사무엘은 최고의 “킹메이커”가 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여, 깊은 존경과 경외심을 품고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서 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다 알고 있음을 상기시키지만, 그 누구도 그를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찬사이자 간증인지요! 인생의 여정과 봉사의 끝자락에서 그와 같은 마무리를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언제?

이야기 자체를 시작하기 전에, 시대의 배경을 고려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때는 악명 높은 사사 시절,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와 ‘현재’의 관련성을 입증할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충분히 제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연대기에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정확히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사무엘서는 사무엘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다윗의 통치가 완성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케일(Keil)과 델리치(Delitzsch)는 사무엘 상하에서 다루는 기간이 주전 1,140부터 1,015년까지의 약 125년에 달할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상의 사건은 삼손이 사사직을 수행하고 공을 세운 시기와 일치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단(Dan)에서는 강한 남자의 실패가 있었지만, 라마다임소빔에서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독실하고 경건한 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살고 있었다면 의심할 바 없이 우리의 시선은 단 지파와 삼손에게 쏠렸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자였으니까요. 블레셋의 원수에 대한 승리가, 실제로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사는 임신하지 못하고 비난받는 한 여인의 기도에서 비롯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서?

사무엘에 관한 고찰은 우리를 여러 곳으로 데려갈 것이며, 그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에 비추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닐지 모르지만, 실로, 길갈, 에벤에셀, 미스바, 벧엘 같은 곳은 저마다의 추억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어떤가요? 사사기 17-19장과 룻기 1장의 어두운 역사는 사사들의 흐름을 끊고 등장한 보아스의 이야기로 부분적인 여명이 비췄으며, 유다 베들레헴에서 다윗이 등장함으로 어둠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가 전진할 때, 우리 각자가 성령님에 겸손히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자에게는 기록한 내용이 유익한 것이 되기를, 독자에게는 그 읽은 내용이 유익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교훈들은 분명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기를!
서평


목차


저자 소개 / 4
제1장 - 서문 / 5
제2장 - 사무엘과 그의 부모 / 14
제3장 - 사무엘과 그 사람들 / 37
제4장 - 사무엘과 그 막간 / 58
제5장 - 사무엘 그 선지자 / 73
제6장 - 사무엘과 그의 준비 / 93
제7장 - 사무엘과 그 섬김의 길 / 113
제8장 - 사무엘과 자녀양육 / 134
제9장 - 사무엘과 원칙들 / 155
제10장 - 사무엘과 기도 / 178
제11장 - 사무엘과 권력 / 194
제12장 - 그림, 예고, 약속, 원칙, 예언적 살피기 / 213
제13장 - 사무엘과 후기 / 223

약력
성경 인물 탐구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 인물 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은 “What the Bible Teaches” 시리즈(횃불주석 시리지-전도출판사 역간중)에서 잠언 주석을 작성한 A. J. 히긴스가 집필했다.

A. J. 히긴스(Higgins)와 그의 아내 룻(Ruth)은 미국 뉴저지주 해돈 하이츠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두 딸과 두 손자를 두고 있다. 저자는 21세에 구원을 받은 후 곧바로 교회 모임에 영접되었다.

그는 거주하는 지역에서 일반 진료 의사로서의 업무를 계속해 왔다. 그와 그의 아내는 뉴저지주 바링턴에서 모이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다른 형제들과 함께 리더십 책임을 나누고 있다.

그의 사역은 북아메리카 전역, 영국, 아시아의 여러 국가로 확장되었다. 그의 사역의 부담은 젊은 신자들과 교회 진리에 있다. 그는 북미의 모임 출판사 “Truth and Tidings”(진리와 소식)에 기고해 왔다.
리뷰


상세설명

서문

 

 

 

왜?

 

선지자 사무엘은 아마도 구약성서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인물일 것입니다. 바울 자신은 사무엘을 “선지자 사무엘까지”(행 13:20)라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 역사의 큰 전환점으로 언급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99편 6절에서 사무엘을 모세와 아론과 나란히 두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주님께서도 예레미야 15장 1절에서 고상하고 기억에 남을만한 표현을 사용하셔서 사무엘을 모세와 연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이전 세기의 작가 중 한 명인 페러데이(W.W.Fereday)는 그를 “하나님의 비상사태 대응자”(God’s Emergency Man)라고 불렀습니다.

 

나실인, 민족의 회복자, 레위인, 마지막 사사이자 첫째로 선지자 직무를 맡은 자, 왕을 세우는 자, 왕을 폐위시키는 자까지, 그의 직무에 대한 설명은 인상적이며 구약성경에서 그에게 특별한 위치를 부여합니다. 마지막 사사이자 첫 선지자로서 그리고 왕조를 연 자로서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에서도 전환점이 되는 핵심 인물입니다.

 

그러나 왕을 세우는 자들이나 사사들, 나실인들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3,0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사람의 생애를 연구하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우리는 그의 삶과 신념, 품성을 존경할지 모르지만, 사무엘을 연구함으로써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전에 기록된 것들”(롬 15:4)의 유익과 그것이 우리를 깨우치기 위한 “경계”(고전 10:11)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뛰어나기에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으며 우리의 지능과 능력이 그들보다 수천 년 앞서 있다고 가정하는 시대적 오만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기술 면에서 발전했고 정보와 견해의 홍수에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혜는 많은 사람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고조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욥은 그의 웅변적이고 통찰력 있는 탄식(욥기 28장)을 통해 지혜가 얼마나 얻기 어렵고 귀한지, 그리고 얼마나 부지런히 구해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혜’이며, 그 교훈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지혜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사무엘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의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몇 가지만 생각해 봅시다.

 

● 그는 선지자 직분을 맡은 최초의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선지자를 일으키셔야 했을까요?

● 자녀 양육에 관한 교훈 – 잘한 점과 못한 점

● 책 속에 보석처럼 흩어져 있는, 삶의 원리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원리

● 기도의 교훈 - 한 여성, 한 남성, 한 국가

● 봉사를 위한 준비 - 작고 하찮은 아이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는가?

● 권력 - 권력의 선용과 남용, 그리고 이양

● 하나님을 위한 당신의 봉사를 찾는 길

●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진할 뿐 아니라 그 실패를 실제로 활용하는 하나님의 목적

 

어떻게?

 

사무엘서를 한 절씩 주해하는 대신, 이어지는 장에서는 때때로 책 일부를 다루게 될 것이며, 다른 장에서는 주제를 선택하여 사무엘상 전반에 걸쳐 추적할 것입니다. 때로는 사무엘의 삶이 나중에 이스라엘의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볼 때 사무엘의 삶보다 조금 더 확장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의 삶을 다루게 될 다른 분들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이 우리의 의도는 아니지만, 다윗이 왕위에 오르는 데 사무엘이 한 역할을 언급하지 않고 그의 삶에 대해 기술하기는 불가능할뿐더러, 사무엘에 대한 결례일 것입니다.

 

사무엘의 이름을 지닌 구약성서의 두 책의 저자가 누구인가는 논란과 추측의 문제가 되어왔습니다. 사무엘의 죽음은 사무엘상이 끝나기 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삼상 25:1) 그가 사무엘서 전체의 저자일 수는 없음이 당연하고, 사무엘하의 저자일 수 없다는 것은 더더욱 확실합니다. 사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무엘상하는, 열왕기상하가 한 권인 것처럼 한 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칠십인역(Septuagint)과 제롬의 라틴어역 성경인 불가타(Vulgate)에서는 이 네 권의 책이 왕국의 책들(The Books of the Kingdom)로 불립니다. 따라서 알려지지 않은 한 작가(에스라?)가 기록을 수집하여 우리를 위해 편집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영적 교훈을 배우는 데 저작권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무엘상을 중심으로 성경의 다른 곳을 가끔 둘러보며 성령님이 어떻게 사무엘을 영화롭게 하셨는지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사무엘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독특하고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사사요, 처음으로 선지자의 직분을 맡은 자입니다(아브라함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였으나 같은 의미에서는 아니었다). 사무엘 이전에는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소통하시는 통로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직은 실패했습니다. 세습은 악용과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마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제사장직을 제쳐두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가족 관계로 직위에 오르지 못한 남자들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각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새롭게” 나올 것이며 민족을 향한 그분의 음성이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들 중 첫째 사람이었습니다. 다시는 제사장 직분이 하나님께서 그 민족에게 말씀하시는 수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고라 자손으로서 레위인이었으며, 그는 또한 제사장의 성격으로 행동했습니다. 이런 사무엘의 역할 안에서 장차 그 백성의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재판관으로 오실 다른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이 모든 직분은 통합될 것이며 그분은 제사장으로서 그분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나약함과 실패는 결코 그분의 보좌와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분에게는 후계자가 필요 없습니다.

 

사무엘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습니다. 그 땅 북쪽에 아마도 사무엘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또 다른 나실인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흥미로울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삼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나실인 신분은 더럽혀졌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을 위한 구별과 성별 된 삶에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포도주, 여자, 블레셋의 오락 등 주변의 모든 유혹에 굴복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나실인의 신분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사무엘의 삶 모든 양상과 국면은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우리의 유익을 위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자라는” 그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고, 실로의 오염 속에서도 그가 어떻게 보호받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과 그가 엘리에게 전한 엄숙한 메시지 이후, 그는 우리가 언약궤를 추적하여 이스라엘에서부터 다곤의 집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언약궤의 운명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은 사무엘상하에서 반복될 근본적인 주제의 토대를 마련합니다. 곧 인간의 흥망성쇠, 그리고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그 실패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누군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와 신정(그분의 통치)을 거부할 수는 있지만, 그분을 폐위시킬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을 온 나라에 회개를 불러일으켜 블레셋 사람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할 수 있는 성숙한 사람으로 다시 한번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1,000년 후의 대선지자 기간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기간”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간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무엘이 뿔을 들고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예를 깨달았을까요? 그는 다윗을 구별하여 다윗의 씨를 왕좌에 앉힘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비약적인 도약을 이루고 있는지 깨달았을까요? 그는 이새의 집에서 “가장 작은 자”(the least)에게 기름을 붓는 그 특별한 행위가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게 될 “더 큰 자”(the Greater)를 예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의 통찰력의 정도를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영원의 관점에서 그가 돌이켜본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특권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사무엘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왕을 세우는 자(킹메이커)”였습니다. 이 용어는 원래 장미 전쟁 당시 ‘킹메이커 워릭’이라는 이름으로 제16대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에게 적용되었습니다. 문서로 기록된 최초의 사용은 1595년이지만, 2500년보다 훨씬 이전에 사무엘은 최고의 “킹메이커”가 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여, 깊은 존경과 경외심을 품고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 백성 앞에 서서 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를 다 알고 있음을 상기시키지만, 그 누구도 그를 향해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지 못합니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얼마나 큰 찬사이자 간증인지요! 인생의 여정과 봉사의 끝자락에서 그와 같은 마무리를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언제?

 

이야기 자체를 시작하기 전에, 시대의 배경을 고려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때는 악명 높은 사사 시절,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와 ‘현재’의 관련성을 입증할 타당한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충분히 제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들의 연대기에 사무엘상과 사무엘하는 정확히 어디에 넣어야 할까요? 사무엘서는 사무엘의 탄생으로 시작하여 다윗의 통치가 완성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케일(Keil)과 델리치(Delitzsch)는 사무엘 상하에서 다루는 기간이 주전 1,140부터 1,015년까지의 약 125년에 달할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그렇다면 사무엘상의 사건은 삼손이 사사직을 수행하고 공을 세운 시기와 일치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단(Dan)에서는 강한 남자의 실패가 있었지만, 라마다임소빔에서는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독실하고 경건한 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 당시에 살고 있었다면 의심할 바 없이 우리의 시선은 단 지파와 삼손에게 쏠렸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구원자였으니까요. 블레셋의 원수에 대한 승리가, 실제로는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사는 임신하지 못하고 비난받는 한 여인의 기도에서 비롯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어디서?

 

사무엘에 관한 고찰은 우리를 여러 곳으로 데려갈 것이며, 그중 일부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에 비추어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라마다임소빔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닐지 모르지만, 실로, 길갈, 에벤에셀, 미스바, 벧엘 같은 곳은 저마다의 추억과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은 어떤가요? 사사기 17-19장과 룻기 1장의 어두운 역사는 사사들의 흐름을 끊고 등장한 보아스의 이야기로 부분적인 여명이 비췄으며, 유다 베들레헴에서 다윗이 등장함으로 어둠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가 전진할 때, 우리 각자가 성령님에 겸손히 의지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작자에게는 기록한 내용이 유익한 것이 되기를, 독자에게는 그 읽은 내용이 유익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교훈들은 분명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각자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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