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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주석 - 아모스, 오바댜

  • 소비자가 10,000원
  • 저자 잭 헤이 / 필립 하딩 
  • 페이지수 208 
  • 출간일 2023년 6월 3 
  • 판형 신국판 150*225 
  • 판매가 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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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아모스 서론>

설교자 아모스
우리는 아모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아모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조차도 그의 예언의 내용 안에만 있다. 아모스서 7장 14~15절에서 그의 개인사에 대한 일부분을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그의 가족에 관한 내용은 없고, 직업에 관해서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밝힐 뿐이다. 아모스는 1장 1절에서 자신을 “드고아 목자” 중 한 사람으로 묘사할 때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단 한 번 사용된 특별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열왕기하 3장 4절에서 모압 왕 메사를 지칭한 “양을 치는 자”(5349)이다. 가능한 해석은 아모스가 비천한 출신이지만 숙련된 목축업자였으므로 그가 세속적인 일에 실패한 것이 그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내몬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아는 자들에 따르면 비록 그의 글쓰기와 표현 방식이 투박하긴 하지만,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지자의 제자들”(왕하 2:3) 중 하나로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학문 없는 범인”으로 여겼지만,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행 4:13)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에 관한 한, 지적 혹은 교육적 성취가 한 사람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거나 자격을 박탈하지 않는다. 아모스가 가진 것은 소명의식이었다.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7:15). 그는 모세, 기드온(출 3:10-4:17, 삿 6:11-24절)과 같은 더 유명한 인물들처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아모스”는 “부담” 또는 “짐”이라는 뜻인데, 그의 사역이 심판에 관한 편으로 무게가 실린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또한 그가 짊어진 책임감의 지표이기도 하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3:8)

아모스의 고향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2마일쯤 떨어진 ‘드고아’였다. 성경에서 드고아는 요압이 그 지역의 “지혜로운 여인”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수치심을 주어서 관계가 소원해진 그의 아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고자 속임수를 썼을 때(삼하 14:1-24) 처음 등장한다. 그곳은 르호보암에 의해서 방어 정책의 하나로 요새화되었으며(대하 11:5-10), 실제로 그 이름은 “방책”(8620)이라는 뜻이 있다. 그 근처는 여호사밧이 요단강 너머에서 온 연합군을 상대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장면이 있는(대하 20:20), 약간의 역사가 있는 장소이다.

유다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요 사역은 이스라엘 북 왕국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벧엘은 그의 사역지였으며(7:13), 그곳은 여러 금송아지 중 하나가 있던 곳이자, 왕의 휴양지였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왕상 13:1), 거기서 그는 여로보암(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든 첫 번째 여로보암)과 관련된 상황이 재현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평범한 마을 출신의 초라한 배경을 가졌지만, 수많은 사회악을 저지르고도 번영하는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대변자로 선택된 한 사람의 그림을 보게 된다.

시기

예언의 첫 구절은 대략 그의 사역 시기를 나타낸다. 웃시야가 유다의 왕좌에 올랐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다. 웃시야 왕은 여러 해 동안 여호와께 충성할 것을 장려했지만, 그의 왕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악의 잔재(2:4-5)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반면 여로보암은 150여 년 전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도입했던 우상숭배 체계를 고수했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을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선지자 요나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의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솔로몬이 다스리던 평온한 시대(왕하 14:23-29)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웃시야와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은 여러 해 겹쳤기 때문에 예언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심지어 지진에 대한 언급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안 되는데, 역사가들도 그 연대를 확정하지 못했다. 역사서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선지자 스가랴는 지진을 일으킨 원인에 대한 암시를 준다(슥 14:5). 예언 가운데 어느 것도 그 가르침을 이해하거나 그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데 결정적인, 정확한 연대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뉴베리 성경은 그 연대를 BC 787년으로 제시한다. 다른 주석가들도 거의 동의고 있으며, 그 연도는 1절에 나타난 기간 안에 있다.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이전에 전쟁에 투입되었던 자원이 이제는 경제 성장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번영은 그 시대의 관심사였다. 모든 문화와 시대에서 풍요는 불의와 착취, 나태함과 부도덕과 함께 다른 타락의 징후를 낳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연구가 진행되어 가면서 밝혀질 터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여로보암 왕국의 특징들이었고, 이 모든 것들은 아모스 선지자의 모진 정죄를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다.

예언

이 책의 개요는 서로 다른 길이의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1. 서론(1:1-2)
2. 여덟 이방 나라의 죄와 징벌(1:3-2:16)
3.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와 징벌(3:1-6:14)
4. 이스라엘을 향해 다가오는 심판의 예언과 설명(7:1-9:10) (7:10-17은 삽입절로서, 아모스의 사역에 대한 반대를 기록했다)
5.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 회복(9:11-15)


<오바댜 서론>



오바댜의 예언은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짧은 책으로, 21개의 구절만을 담고 있다. 오바댜서는 예언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신약성경에는 오바댜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두 개의 보완적인 언급은 있다. 8절은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라고 말하는데, 고린도전서 1장 19절은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21절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오바댜서는 짧지만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예루살렘이 적들에게 함락당하고 약탈당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오바댜는 그날을 패망하는 날, 고난의 날(12절), 그리고 환난을 당하는 날(13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혈연관계 이웃인 에돔에게 자신들을 돕고 지원해주기를 기대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에돔은 돕기는커녕 침략자들과 합세하여(11절), 이스라엘의 고난의 날을 기뻐했으며(12절),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13절), 그들의 탈출을 막고 또 도망하는 그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14절). 따라서 오바댜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무관심과 잔인한 태도에 대해서 에돔을 비판적으로 정죄한다. 이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본토를 회복하고,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차지하는, “말세”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에돔을 포함한 여러 이방 나라들의 연합군에 의해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시 83편). 오바댜는 여호와의 날과 다가올 왕국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일에 대한 응징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오바댜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네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진술한다(1,4,8,18절). 탯포드(Tatford)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통일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만, 그런데도 일부 비평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T. H. 로빈슨(Robinson)은 <이스라엘의 역사>(A History of Israel)란 책에서, 오바댜서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일곱 개의 분리된 신탁들의 모음이라고 제안하지만, 그 형식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일관된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무시되어야만 한다. …오바댜서는 언어가 단순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단어 사용은 적지만 생각은 풍부하다.” 오바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드러났던 에돔의 증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통해서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높아짐을 예언한다. 또한, 두 나라의 도덕적, 영적 문제를 드러낸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보였고(호 3:1, 14:4),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말했으며(욜 1:15, 2:1, 11, 31, 3:14), 아모스는 여호와의 정의(암 2:6, 3:10, 5:24, 6:12)를 다루었고, 오바댜는 에돔의 파멸을 우리 앞에 소개한다.

선지자 오바댜

오바댜서는, 평범한 그의 이름 외에는 선지자나 그의 개인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아합왕의 왕궁을 맡은 자의 이름이었는데,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다(왕상 18:3). 다윗 왕의 후손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윗의 족보에 언급되었다(대상 3:21). 잇사갈의 자손이었던 이스라히야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대상 7:1-3). 스마야의 아들이며 레위 사람으로,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이름도 오바댜였다(대상 9:14-16). 또 다른 오바댜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의 자손인 아셀의 아들이다(대상 9:39-44, 대상 8:38과 비교해보라). 또한, 갓 사람으로 전사 중 오바댜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시글락에서 다윗 왕과 합류했고(대상 12:8-9), 스불론 지파의 지도자 이스마야의 아버지 또한 이름이 오바댜였다(대상 27:1619). 여호사밧 왕의 방백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유다 성읍에서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 파견되었다(대하 17:7). 요시아 왕 시대에 성전을 수리하는 감독관 중 한 명이 므라리의 아들인 오바댜였다(대하 34:8-12). 또 다른 오바댜는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 중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스 8:1,8).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제사장 중 한 사람이자, 성문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는 문지기인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느 9:38- 10:8, 12:25). 할로우(Harlow)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예언의 저자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11명의 저자와 같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라에치 박사(Dr Laetsch)는 “델리츠는 그가 유다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왕실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파견된 왕족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한다(대하 17:7-9)”고 말했다. 랍비 로젠버그는 “랍비들은 오바댜 선지자를 열왕기상 18장에서 아합 왕의 왕궁을 맡았던 행정관 오바댜와 동일시한다. 실제로 그들은 오바댜가 예언을 성취한 것은, 이세벨로부터 100명의 선지자들을 숨겨주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준 그의 공로로 돌리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탯포드는 “제롬은 오바댜 선지자가 아합의 행정관과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했지만, 이 이론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오바댜 선지서를 쓴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의 이름에서 추측해보건대, 그는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신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오바댜서를 기록한 시기

오바댜가 살았던 시대를 확인하고 그의 예언의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화인버그(Feinberg)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적개심은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오바댜서를 공부하는 학도들은 이 선지서의 시기를 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어쩌면 오바댜는 바벨론 포로 시기(BC 586년)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이드(Boyd)는 “내부 증거(11-12절)는 오바댜 선지서가 기록된 날짜를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최종적으로 정복당하는 시기(BC 597년) 근처로 확정하는 듯 보인다”라고 말했다. 모리쉬(Morrish)의 콘사이스 성경 사전은 “예언의 일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시기를 언급하는 듯 보인다. …에돔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에 바벨론과 연합군을 형성했다(12-14절). …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을 도왔다는 이러한 암시는 오바댜의 예언을 기원전 587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탯포드는 “오바댜가 언급한 시기는 기원전 586년 갈대아인의 침략 시기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에돔에 대한 예언은 느부갓네살이 5년 후인 기원전 581년 그들의 나라를 초토화했을 때 적어도 부분적인 성취가 이루어졌다”라고 기록했다. 이 시기는 유다 왕 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재위 기간(BC 597-586년)이었으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통치했던 8년에서 19년 사이의 기간이었다(왕하 24:8-12, 렘 52:12-14). 오바댜서의 처음 일곱 구절과 예레미야서 49장 7-16절, 그리고 오바댜서 15,16절과 예레미야서 25장 28,29절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탯포드는 “일반적으로 오바댜는 초기 선지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그의 글을 인용했다”라고 말한다. 예레미야서 1장 1-3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요시야 13년부터 유다의 왕 시드기야 왕 말기 사이에(BC 626-586년) 예언했다. 또한, 오바댜서를 시작하는 구절과 에스겔서 25장 12-13절 사이에도 유사점이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사로잡힌 지 5년부터(겔 1:1,2)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지 14년 후(겔 40:1), 즉 기원전 593-573년까지 20년 동안 에돔을 쳐서 예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겔 35장). 오바댜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오바댜의 예언이 기원전 597년에서 기원전 581년 사이에 선포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오바댜서에 등장하는 두 민족

에돔은 오바댜서 예언의 주된 화제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아모스, 말라기 등 6명의 선지자가 “세일산” 또는 “이두매”라고도 불리는 에돔에 대해 예언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쌍둥이 형제인 에서의 자손이다. 태 속에서 서로 싸웠던 그들은 두 민족, 즉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미래의 적대적인 관계를 예고했다(창 25:21-24, 27:41).

에서는 붉은 팥죽 때문에 “에돔”이라고도 불렸다(창 25:30). 이 이름은 그의 성격을 표현이자 또한 그의 후손들을 가리켰다. 에서는 그의 자아(육신)와 너무나 동일시되었기에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 즉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반항적인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에서의 원한은 그의 후손들에게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적대감은 영적인 진보를 방해하는 육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는”(갈 5:17) 그림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내적인 싸움을 경험하며, 육체가 영적 성장을 방해할 모든 기회를 붙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롬 13:14). 그리스도인은 육신대로 살 빚진 사람들이 아니다(롬 8:12). 육신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일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육신은 항상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에 힘쓸 뿐이기에, 하나님의 일에 낄 자리가 없다.

에서와 그 자손인 에돔 사람들은 장자의 명분을 취한(창 25:31-34, 히 12:16) 야곱과 그 자손인 이스라엘 용서하기를 완강하게 거절했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밀접한 관계였지만, 그들은 숙적이었다. 그들의 계속되는 원한은 세 차례에 걸쳐서 뚜렷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해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에돔 왕에게 그의 나라를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민 20:17)라고 구했다. 하지만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돔 왕은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았다.”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호르산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다음 그들은 에돔의 나라를 피하고자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여행했다(민 21:4). 훗날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통치하던 시기에, 에돔 사람이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대하 21:8-10).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 기간에도(대하 25:11-16) 에돔과 더 큰 혼란이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또한 아하스의 통치 기간에 유다로 쳐들어와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갔다(대하 28:16-17). 그들은 또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오히려 그를 도와 협공을 했다(시 137:7). 에돔은, 오바댜, 예레미야(49:7-22), 에스겔(35장), 요엘(3:19)에 의해 표현된 하나님의 정죄에서 분명히 이스라엘에 대해 사악하고 보복적인 태도를 가졌다.

오바댜서의 개요

I. 에돔의 운명 선언(1-9절)
II. 하나님의 심판 목적(10-14절)
III.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15-21절)
(i) 전 세계적인 심판의 예고(15-16절)
(ii)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짐(17-21절).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에돔인들의 무자비한 증오를 보여준다. 이 예언서는 에돔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님의 왕국이 설립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주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실행하는 것이었으며(창 12:3, 27:29과 비교하라), 에돔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던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는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서평


목차

아모스서
참고 문헌………………………………………………………………5
아모스 서론……………………………………………………………8
아모스 1장……………………………………………………………12
아모스 2장……………………………………………………………26
아모스 3장……………………………………………………………39
아모스 4장……………………………………………………………54
아모스 5장……………………………………………………………70
아모스 6장……………………………………………………………89
아모스 7장…………………………………………………………104
아모스 8장…………………………………………………………126
아모스 9장…………………………………………………………144

오바댜서
참고 문헌……………………………………………………………166
오바댜 서론…………………………………………………………172
오바댜서 ……………………………………………………………180
약력

리뷰


상세설명

오바댜 서론

 

 

 

오바댜의 예언은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짧은 책으로, 21개의 구절만을 담고 있다. 오바댜서는 예언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신약성경에는 오바댜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두 개의 보완적인 언급은 있다. 8절은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라고 말하는데, 고린도전서 119절은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21절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요한계시록 1115절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오바댜서는 짧지만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예루살렘이 적들에게 함락당하고 약탈당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오바댜는 그날을 패망하는 날, 고난의 날(12), 그리고 환난을 당하는 날(13)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혈연관계 이웃인 에돔에게 자신들을 돕고 지원해주기를 기대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에돔은 돕기는커녕 침략자들과 합세하여(11), 이스라엘의 고난의 날을 기뻐했으며(12),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13), 그들의 탈출을 막고 또 도망하는 그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14). 따라서 오바댜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무관심과 잔인한 태도에 대해서 에돔을 비판적으로 정죄한다. 이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본토를 회복하고,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차지하는, “말세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에돔을 포함한 여러 이방 나라들의 연합군에 의해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83). 오바댜는 여호와의 날과 다가올 왕국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일에 대한 응징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오바댜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네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진술한다(1,4,8,18). 탯포드(Tatford)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통일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만, 그런데도 일부 비평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T. H. 로빈슨(Robinson)<이스라엘의 역사>(A History of Israel)란 책에서, 오바댜서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일곱 개의 분리된 신탁들의 모음이라고 제안하지만, 그 형식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일관된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무시되어야만 한다. 오바댜서는 언어가 단순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단어 사용은 적지만 생각은 풍부하다.” 오바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드러났던 에돔의 증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통해서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높아짐을 예언한다. 또한, 두 나라의 도덕적, 영적 문제를 드러낸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보였고(3:1, 14:4),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말했으며(1:15, 2:1, 11, 31, 3:14), 아모스는 여호와의 정의(2:6, 3:10, 5:24, 6:12)를 다루었고, 오바댜는 에돔의 파멸을 우리 앞에 소개한다.

 

선지자 오바댜

 

오바댜서는, 평범한 그의 이름 외에는 선지자나 그의 개인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아합왕의 왕궁을 맡은 자의 이름이었는데,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다(왕상 18:3). 다윗 왕의 후손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윗의 족보에 언급되었다(대상 3:21). 잇사갈의 자손이었던 이스라히야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대상 7:1-3). 스마야의 아들이며 레위 사람으로,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이름도 오바댜였다(대상 9:14-16). 또 다른 오바댜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의 자손인 아셀의 아들이다(대상 9:39-44, 대상 8:38과 비교해보라). 또한, 갓 사람으로 전사 중 오바댜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시글락에서 다윗 왕과 합류했고(대상 12:8-9), 스불론 지파의 지도자 이스마야의 아버지 또한 이름이 오바댜였다(대상 27:1619). 여호사밧 왕의 방백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유다 성읍에서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 파견되었다(대하 17:7). 요시아 왕 시대에 성전을 수리하는 감독관 중 한 명이 므라리의 아들인 오바댜였다(대하 34:8-12). 또 다른 오바댜는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 중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8:1,8).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제사장 중 한 사람이자, 성문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는 문지기인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9:38- 10:8, 12:25). 할로우(Harlow)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예언의 저자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11명의 저자와 같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라에치 박사(Dr Laetsch)델리츠는 그가 유다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왕실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파견된 왕족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한다(대하 17:7-9)고 말했다. 랍비 로젠버그는 랍비들은 오바댜 선지자를 열왕기상 18장에서 아합 왕의 왕궁을 맡았던 행정관 오바댜와 동일시한다. 실제로 그들은 오바댜가 예언을 성취한 것은, 이세벨로부터 100명의 선지자들을 숨겨주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준 그의 공로로 돌리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탯포드는 제롬은 오바댜 선지자가 아합의 행정관과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했지만, 이 이론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오바댜 선지서를 쓴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의 이름에서 추측해보건대, 그는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신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오바댜서를 기록한 시기

 

오바댜가 살았던 시대를 확인하고 그의 예언의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화인버그(Feinberg)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적개심은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오바댜서를 공부하는 학도들은 이 선지서의 시기를 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어쩌면 오바댜는 바벨론 포로 시기(BC 586)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이드(Boyd)내부 증거(11-12)는 오바댜 선지서가 기록된 날짜를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최종적으로 정복당하는 시기(BC 597) 근처로 확정하는 듯 보인다라고 말했다. 모리쉬(Morrish)의 콘사이스 성경 사전은 예언의 일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시기를 언급하는 듯 보인다. 에돔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에 바벨론과 연합군을 형성했다(12-14). 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을 도왔다는 이러한 암시는 오바댜의 예언을 기원전 587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탯포드는 오바댜가 언급한 시기는 기원전 586년 갈대아인의 침략 시기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에돔에 대한 예언은 느부갓네살이 5년 후인 기원전 581년 그들의 나라를 초토화했을 때 적어도 부분적인 성취가 이루어졌다라고 기록했다. 이 시기는 유다 왕 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재위 기간(BC 597-586)이었으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통치했던 8년에서 19년 사이의 기간이었다(왕하 24:8-12, 52:12-14). 오바댜서의 처음 일곱 구절과 예레미야서 497-16, 그리고 오바댜서 15,16절과 예레미야서 2528,29절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탯포드는 일반적으로 오바댜는 초기 선지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그의 글을 인용했다라고 말한다. 예레미야서 11-3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요시야 13년부터 유다의 왕 시드기야 왕 말기 사이에(BC 626-586) 예언했다. 또한, 오바댜서를 시작하는 구절과 에스겔서 2512-13절 사이에도 유사점이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사로잡힌 지 5년부터(1:1,2)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지 14년 후(40:1), 즉 기원전 593-573년까지 20년 동안 에돔을 쳐서 예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35). 오바댜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오바댜의 예언이 기원전 597년에서 기원전 581년 사이에 선포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오바댜서에 등장하는 두 민족

 

에돔은 오바댜서 예언의 주된 화제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아모스, 말라기 등 6명의 선지자가 세일산또는 이두매라고도 불리는 에돔에 대해 예언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쌍둥이 형제인 에서의 자손이다. 태 속에서 서로 싸웠던 그들은 두 민족, 즉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미래의 적대적인 관계를 예고했다(25:21-24, 27:41).

 

에서는 붉은 팥죽 때문에 에돔이라고도 불렸다(25:30). 이 이름은 그의 성격을 표현이자 또한 그의 후손들을 가리켰다. 에서는 그의 자아(육신)와 너무나 동일시되었기에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 즉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반항적인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에서의 원한은 그의 후손들에게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적대감은 영적인 진보를 방해하는 육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는(5:17) 그림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내적인 싸움을 경험하며, 육체가 영적 성장을 방해할 모든 기회를 붙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13:14). 그리스도인은 육신대로 살 빚진 사람들이 아니다(8:12). 육신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일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육신은 항상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에 힘쓸 뿐이기에, 하나님의 일에 낄 자리가 없다.

 

에서와 그 자손인 에돔 사람들은 장자의 명분을 취한(25:31-34, 12:16) 야곱과 그 자손인 이스라엘 용서하기를 완강하게 거절했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밀접한 관계였지만, 그들은 숙적이었다. 그들의 계속되는 원한은 세 차례에 걸쳐서 뚜렷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해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에돔 왕에게 그의 나라를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20:17)라고 구했다. 하지만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돔 왕은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았다.”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호르산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다음 그들은 에돔의 나라를 피하고자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여행했다(21:4). 훗날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통치하던 시기에, 에돔 사람이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대하 21:8-10).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 기간에도(대하 25:11-16) 에돔과 더 큰 혼란이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또한 아하스의 통치 기간에 유다로 쳐들어와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갔다(대하 28:16-17). 그들은 또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오히려 그를 도와 협공을 했다(137:7). 에돔은, 오바댜, 예레미야(49:7-22), 에스겔(35), 요엘(3:19)에 의해 표현된 하나님의 정죄에서 분명히 이스라엘에 대해 사악하고 보복적인 태도를 가졌다.

 

오바댜서의 개요

 

I. 에돔의 운명 선언(1-9)

II. 하나님의 심판 목적(10-14)

III.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15-21)

(i) 전 세계적인 심판의 예고(15-16)

(ii)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짐(17-21).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에돔인들의 무자비한 증오를 보여준다. 이 예언서는 에돔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님의 왕국이 설립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주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실행하는 것이었으며(12:3, 27:29과 비교하라), 에돔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던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는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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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아모스 서론>

설교자 아모스
우리는 아모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아모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조차도 그의 예언의 내용 안에만 있다. 아모스서 7장 14~15절에서 그의 개인사에 대한 일부분을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그의 가족에 관한 내용은 없고, 직업에 관해서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밝힐 뿐이다. 아모스는 1장 1절에서 자신을 “드고아 목자” 중 한 사람으로 묘사할 때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단 한 번 사용된 특별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열왕기하 3장 4절에서 모압 왕 메사를 지칭한 “양을 치는 자”(5349)이다. 가능한 해석은 아모스가 비천한 출신이지만 숙련된 목축업자였으므로 그가 세속적인 일에 실패한 것이 그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내몬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아는 자들에 따르면 비록 그의 글쓰기와 표현 방식이 투박하긴 하지만,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지자의 제자들”(왕하 2:3) 중 하나로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학문 없는 범인”으로 여겼지만,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행 4:13)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에 관한 한, 지적 혹은 교육적 성취가 한 사람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거나 자격을 박탈하지 않는다. 아모스가 가진 것은 소명의식이었다.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7:15). 그는 모세, 기드온(출 3:10-4:17, 삿 6:11-24절)과 같은 더 유명한 인물들처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아모스”는 “부담” 또는 “짐”이라는 뜻인데, 그의 사역이 심판에 관한 편으로 무게가 실린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또한 그가 짊어진 책임감의 지표이기도 하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3:8)

아모스의 고향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2마일쯤 떨어진 ‘드고아’였다. 성경에서 드고아는 요압이 그 지역의 “지혜로운 여인”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수치심을 주어서 관계가 소원해진 그의 아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고자 속임수를 썼을 때(삼하 14:1-24) 처음 등장한다. 그곳은 르호보암에 의해서 방어 정책의 하나로 요새화되었으며(대하 11:5-10), 실제로 그 이름은 “방책”(8620)이라는 뜻이 있다. 그 근처는 여호사밧이 요단강 너머에서 온 연합군을 상대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장면이 있는(대하 20:20), 약간의 역사가 있는 장소이다.

유다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요 사역은 이스라엘 북 왕국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벧엘은 그의 사역지였으며(7:13), 그곳은 여러 금송아지 중 하나가 있던 곳이자, 왕의 휴양지였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왕상 13:1), 거기서 그는 여로보암(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든 첫 번째 여로보암)과 관련된 상황이 재현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평범한 마을 출신의 초라한 배경을 가졌지만, 수많은 사회악을 저지르고도 번영하는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대변자로 선택된 한 사람의 그림을 보게 된다.

시기

예언의 첫 구절은 대략 그의 사역 시기를 나타낸다. 웃시야가 유다의 왕좌에 올랐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다. 웃시야 왕은 여러 해 동안 여호와께 충성할 것을 장려했지만, 그의 왕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악의 잔재(2:4-5)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반면 여로보암은 150여 년 전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도입했던 우상숭배 체계를 고수했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을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선지자 요나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의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솔로몬이 다스리던 평온한 시대(왕하 14:23-29)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웃시야와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은 여러 해 겹쳤기 때문에 예언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심지어 지진에 대한 언급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안 되는데, 역사가들도 그 연대를 확정하지 못했다. 역사서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선지자 스가랴는 지진을 일으킨 원인에 대한 암시를 준다(슥 14:5). 예언 가운데 어느 것도 그 가르침을 이해하거나 그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데 결정적인, 정확한 연대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뉴베리 성경은 그 연대를 BC 787년으로 제시한다. 다른 주석가들도 거의 동의고 있으며, 그 연도는 1절에 나타난 기간 안에 있다.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이전에 전쟁에 투입되었던 자원이 이제는 경제 성장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번영은 그 시대의 관심사였다. 모든 문화와 시대에서 풍요는 불의와 착취, 나태함과 부도덕과 함께 다른 타락의 징후를 낳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연구가 진행되어 가면서 밝혀질 터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여로보암 왕국의 특징들이었고, 이 모든 것들은 아모스 선지자의 모진 정죄를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다.

예언

이 책의 개요는 서로 다른 길이의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1. 서론(1:1-2)
2. 여덟 이방 나라의 죄와 징벌(1:3-2:16)
3.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와 징벌(3:1-6:14)
4. 이스라엘을 향해 다가오는 심판의 예언과 설명(7:1-9:10) (7:10-17은 삽입절로서, 아모스의 사역에 대한 반대를 기록했다)
5.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 회복(9:11-15)


<오바댜 서론>



오바댜의 예언은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짧은 책으로, 21개의 구절만을 담고 있다. 오바댜서는 예언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신약성경에는 오바댜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두 개의 보완적인 언급은 있다. 8절은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라고 말하는데, 고린도전서 1장 19절은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21절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오바댜서는 짧지만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예루살렘이 적들에게 함락당하고 약탈당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오바댜는 그날을 패망하는 날, 고난의 날(12절), 그리고 환난을 당하는 날(13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혈연관계 이웃인 에돔에게 자신들을 돕고 지원해주기를 기대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에돔은 돕기는커녕 침략자들과 합세하여(11절), 이스라엘의 고난의 날을 기뻐했으며(12절),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13절), 그들의 탈출을 막고 또 도망하는 그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14절). 따라서 오바댜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무관심과 잔인한 태도에 대해서 에돔을 비판적으로 정죄한다. 이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본토를 회복하고,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차지하는, “말세”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에돔을 포함한 여러 이방 나라들의 연합군에 의해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시 83편). 오바댜는 여호와의 날과 다가올 왕국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일에 대한 응징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오바댜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네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진술한다(1,4,8,18절). 탯포드(Tatford)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통일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만, 그런데도 일부 비평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T. H. 로빈슨(Robinson)은 <이스라엘의 역사>(A History of Israel)란 책에서, 오바댜서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일곱 개의 분리된 신탁들의 모음이라고 제안하지만, 그 형식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일관된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무시되어야만 한다. …오바댜서는 언어가 단순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단어 사용은 적지만 생각은 풍부하다.” 오바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드러났던 에돔의 증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통해서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높아짐을 예언한다. 또한, 두 나라의 도덕적, 영적 문제를 드러낸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보였고(호 3:1, 14:4),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말했으며(욜 1:15, 2:1, 11, 31, 3:14), 아모스는 여호와의 정의(암 2:6, 3:10, 5:24, 6:12)를 다루었고, 오바댜는 에돔의 파멸을 우리 앞에 소개한다.

선지자 오바댜

오바댜서는, 평범한 그의 이름 외에는 선지자나 그의 개인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아합왕의 왕궁을 맡은 자의 이름이었는데,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다(왕상 18:3). 다윗 왕의 후손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윗의 족보에 언급되었다(대상 3:21). 잇사갈의 자손이었던 이스라히야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대상 7:1-3). 스마야의 아들이며 레위 사람으로,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이름도 오바댜였다(대상 9:14-16). 또 다른 오바댜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의 자손인 아셀의 아들이다(대상 9:39-44, 대상 8:38과 비교해보라). 또한, 갓 사람으로 전사 중 오바댜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시글락에서 다윗 왕과 합류했고(대상 12:8-9), 스불론 지파의 지도자 이스마야의 아버지 또한 이름이 오바댜였다(대상 27:1619). 여호사밧 왕의 방백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유다 성읍에서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 파견되었다(대하 17:7). 요시아 왕 시대에 성전을 수리하는 감독관 중 한 명이 므라리의 아들인 오바댜였다(대하 34:8-12). 또 다른 오바댜는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 중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스 8:1,8).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제사장 중 한 사람이자, 성문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는 문지기인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느 9:38- 10:8, 12:25). 할로우(Harlow)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예언의 저자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11명의 저자와 같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라에치 박사(Dr Laetsch)는 “델리츠는 그가 유다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왕실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파견된 왕족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한다(대하 17:7-9)”고 말했다. 랍비 로젠버그는 “랍비들은 오바댜 선지자를 열왕기상 18장에서 아합 왕의 왕궁을 맡았던 행정관 오바댜와 동일시한다. 실제로 그들은 오바댜가 예언을 성취한 것은, 이세벨로부터 100명의 선지자들을 숨겨주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준 그의 공로로 돌리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탯포드는 “제롬은 오바댜 선지자가 아합의 행정관과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했지만, 이 이론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오바댜 선지서를 쓴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의 이름에서 추측해보건대, 그는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신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오바댜서를 기록한 시기

오바댜가 살았던 시대를 확인하고 그의 예언의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화인버그(Feinberg)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적개심은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오바댜서를 공부하는 학도들은 이 선지서의 시기를 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어쩌면 오바댜는 바벨론 포로 시기(BC 586년)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이드(Boyd)는 “내부 증거(11-12절)는 오바댜 선지서가 기록된 날짜를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최종적으로 정복당하는 시기(BC 597년) 근처로 확정하는 듯 보인다”라고 말했다. 모리쉬(Morrish)의 콘사이스 성경 사전은 “예언의 일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시기를 언급하는 듯 보인다. …에돔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에 바벨론과 연합군을 형성했다(12-14절). …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을 도왔다는 이러한 암시는 오바댜의 예언을 기원전 587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탯포드는 “오바댜가 언급한 시기는 기원전 586년 갈대아인의 침략 시기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에돔에 대한 예언은 느부갓네살이 5년 후인 기원전 581년 그들의 나라를 초토화했을 때 적어도 부분적인 성취가 이루어졌다”라고 기록했다. 이 시기는 유다 왕 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재위 기간(BC 597-586년)이었으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통치했던 8년에서 19년 사이의 기간이었다(왕하 24:8-12, 렘 52:12-14). 오바댜서의 처음 일곱 구절과 예레미야서 49장 7-16절, 그리고 오바댜서 15,16절과 예레미야서 25장 28,29절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탯포드는 “일반적으로 오바댜는 초기 선지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그의 글을 인용했다”라고 말한다. 예레미야서 1장 1-3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요시야 13년부터 유다의 왕 시드기야 왕 말기 사이에(BC 626-586년) 예언했다. 또한, 오바댜서를 시작하는 구절과 에스겔서 25장 12-13절 사이에도 유사점이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사로잡힌 지 5년부터(겔 1:1,2)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지 14년 후(겔 40:1), 즉 기원전 593-573년까지 20년 동안 에돔을 쳐서 예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겔 35장). 오바댜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오바댜의 예언이 기원전 597년에서 기원전 581년 사이에 선포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오바댜서에 등장하는 두 민족

에돔은 오바댜서 예언의 주된 화제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아모스, 말라기 등 6명의 선지자가 “세일산” 또는 “이두매”라고도 불리는 에돔에 대해 예언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쌍둥이 형제인 에서의 자손이다. 태 속에서 서로 싸웠던 그들은 두 민족, 즉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미래의 적대적인 관계를 예고했다(창 25:21-24, 27:41).

에서는 붉은 팥죽 때문에 “에돔”이라고도 불렸다(창 25:30). 이 이름은 그의 성격을 표현이자 또한 그의 후손들을 가리켰다. 에서는 그의 자아(육신)와 너무나 동일시되었기에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 즉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반항적인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에서의 원한은 그의 후손들에게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적대감은 영적인 진보를 방해하는 육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는”(갈 5:17) 그림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내적인 싸움을 경험하며, 육체가 영적 성장을 방해할 모든 기회를 붙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롬 13:14). 그리스도인은 육신대로 살 빚진 사람들이 아니다(롬 8:12). 육신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일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육신은 항상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에 힘쓸 뿐이기에, 하나님의 일에 낄 자리가 없다.

에서와 그 자손인 에돔 사람들은 장자의 명분을 취한(창 25:31-34, 히 12:16) 야곱과 그 자손인 이스라엘 용서하기를 완강하게 거절했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밀접한 관계였지만, 그들은 숙적이었다. 그들의 계속되는 원한은 세 차례에 걸쳐서 뚜렷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해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에돔 왕에게 그의 나라를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민 20:17)라고 구했다. 하지만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돔 왕은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았다.”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호르산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다음 그들은 에돔의 나라를 피하고자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여행했다(민 21:4). 훗날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통치하던 시기에, 에돔 사람이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대하 21:8-10).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 기간에도(대하 25:11-16) 에돔과 더 큰 혼란이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또한 아하스의 통치 기간에 유다로 쳐들어와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갔다(대하 28:16-17). 그들은 또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오히려 그를 도와 협공을 했다(시 137:7). 에돔은, 오바댜, 예레미야(49:7-22), 에스겔(35장), 요엘(3:19)에 의해 표현된 하나님의 정죄에서 분명히 이스라엘에 대해 사악하고 보복적인 태도를 가졌다.

오바댜서의 개요

I. 에돔의 운명 선언(1-9절)
II. 하나님의 심판 목적(10-14절)
III.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15-21절)
(i) 전 세계적인 심판의 예고(15-16절)
(ii)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짐(17-21절).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에돔인들의 무자비한 증오를 보여준다. 이 예언서는 에돔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님의 왕국이 설립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주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실행하는 것이었으며(창 12:3, 27:29과 비교하라), 에돔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던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는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서평


목차

아모스서
참고 문헌………………………………………………………………5
아모스 서론……………………………………………………………8
아모스 1장……………………………………………………………12
아모스 2장……………………………………………………………26
아모스 3장……………………………………………………………39
아모스 4장……………………………………………………………54
아모스 5장……………………………………………………………70
아모스 6장……………………………………………………………89
아모스 7장…………………………………………………………104
아모스 8장…………………………………………………………126
아모스 9장…………………………………………………………144

오바댜서
참고 문헌……………………………………………………………166
오바댜 서론…………………………………………………………172
오바댜서 ……………………………………………………………180
약력

리뷰


상세설명

<아모스 서론>

설교자 아모스
우리는 아모스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아모스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조차도 그의 예언의 내용 안에만 있다. 아모스서 7장 14~15절에서 그의 개인사에 대한 일부분을 볼 수 있는데, 그마저도 그의 가족에 관한 내용은 없고, 직업에 관해서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밝힐 뿐이다. 아모스는 1장 1절에서 자신을 “드고아 목자” 중 한 사람으로 묘사할 때 구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단 한 번 사용된 특별한 단어를 사용했는데, 열왕기하 3장 4절에서 모압 왕 메사를 지칭한 “양을 치는 자”(5349)이다. 가능한 해석은 아모스가 비천한 출신이지만 숙련된 목축업자였으므로 그가 세속적인 일에 실패한 것이 그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내몬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아는 자들에 따르면 비록 그의 글쓰기와 표현 방식이 투박하긴 하지만,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성령님의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지자의 제자들”(왕하 2:3) 중 하나로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하나님을 위한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으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학문 없는 범인”으로 여겼지만,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행 4:13)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에 관한 한, 지적 혹은 교육적 성취가 한 사람에게 자격을 갖추게 하거나 자격을 박탈하지 않는다. 아모스가 가진 것은 소명의식이었다.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7:15). 그는 모세, 기드온(출 3:10-4:17, 삿 6:11-24절)과 같은 더 유명한 인물들처럼 변명하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아모스”는 “부담” 또는 “짐”이라는 뜻인데, 그의 사역이 심판에 관한 편으로 무게가 실린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또한 그가 짊어진 책임감의 지표이기도 하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3:8)

아모스의 고향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2마일쯤 떨어진 ‘드고아’였다. 성경에서 드고아는 요압이 그 지역의 “지혜로운 여인”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수치심을 주어서 관계가 소원해진 그의 아들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고자 속임수를 썼을 때(삼하 14:1-24) 처음 등장한다. 그곳은 르호보암에 의해서 방어 정책의 하나로 요새화되었으며(대하 11:5-10), 실제로 그 이름은 “방책”(8620)이라는 뜻이 있다. 그 근처는 여호사밧이 요단강 너머에서 온 연합군을 상대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장면이 있는(대하 20:20), 약간의 역사가 있는 장소이다. 

유다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요 사역은 이스라엘 북 왕국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벧엘은 그의 사역지였으며(7:13), 그곳은 여러 금송아지 중 하나가 있던 곳이자, 왕의 휴양지였다. 역사는 반복되는 법이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서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왕상 13:1), 거기서 그는 여로보암(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든 첫 번째 여로보암)과 관련된 상황이 재현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평범한 마을 출신의 초라한 배경을 가졌지만, 수많은 사회악을 저지르고도 번영하는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대변자로 선택된 한 사람의 그림을 보게 된다. 

시기

예언의 첫 구절은 대략 그의 사역 시기를 나타낸다. 웃시야가 유다의 왕좌에 올랐고,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다. 웃시야 왕은 여러 해 동안 여호와께 충성할 것을 장려했지만, 그의 왕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악의 잔재(2:4-5)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반면 여로보암은 150여 년 전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도입했던 우상숭배 체계를 고수했고,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을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선지자 요나가 예언한 대로, 이스라엘의 빼앗긴 영토를 회복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은 솔로몬이 다스리던 평온한 시대(왕하 14:23-29)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다. 웃시야와 여로보암의 통치 기간은 여러 해 겹쳤기 때문에 예언의 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심지어 지진에 대한 언급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안 되는데, 역사가들도 그 연대를 확정하지 못했다. 역사서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지만, 선지자 스가랴는 지진을 일으킨 원인에 대한 암시를 준다(슥 14:5). 예언 가운데 어느 것도 그 가르침을 이해하거나 그 진리를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데 결정적인, 정확한 연대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뉴베리 성경은 그 연대를 BC 787년으로 제시한다. 다른 주석가들도 거의 동의고 있으며, 그 연도는 1절에 나타난 기간 안에 있다.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우위는 이전에 전쟁에 투입되었던 자원이 이제는 경제 성장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번영은 그 시대의 관심사였다. 모든 문화와 시대에서 풍요는 불의와 착취, 나태함과 부도덕과 함께 다른 타락의 징후를 낳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연구가 진행되어 가면서 밝혀질 터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여로보암 왕국의 특징들이었고, 이 모든 것들은 아모스 선지자의 모진 정죄를 받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했다. 

예언

이 책의 개요는 서로 다른 길이의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1. 서론(1:1-2)
2. 여덟 이방 나라의 죄와 징벌(1:3-2:16) 
3.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죄와 징벌(3:1-6:14) 
4. 이스라엘을 향해 다가오는 심판의 예언과 설명(7:1-9:10) (7:10-17은 삽입절로서, 아모스의 사역에 대한 반대를 기록했다)
5.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 회복(9:11-15)


<오바댜 서론>



오바댜의 예언은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짧은 책으로, 21개의 구절만을 담고 있다. 오바댜서는 예언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신약성경에는 오바댜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두 개의 보완적인 언급은 있다. 8절은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라고 말하는데, 고린도전서 1장 19절은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21절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요한계시록 11장 15절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말한다. 

오바댜서는 짧지만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예루살렘이 적들에게 함락당하고 약탈당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오바댜는 그날을 패망하는 날, 고난의 날(12절), 그리고 환난을 당하는 날(13절)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때는 이스라엘이 혈연관계 이웃인 에돔에게 자신들을 돕고 지원해주기를 기대했던 시기였다. 하지만 에돔은 돕기는커녕 침략자들과 합세하여(11절), 이스라엘의 고난의 날을 기뻐했으며(12절),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고(13절), 그들의 탈출을 막고 또 도망하는 그들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다(14절). 따라서 오바댜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무관심과 잔인한 태도에 대해서 에돔을 비판적으로 정죄한다. 이 예언은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본토를 회복하고,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자신의 본래 자리를 차지하는, “말세”를 바라보고 있다. 그때 이스라엘은 에돔을 포함한 여러 이방 나라들의 연합군에 의해서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시 83편). 오바댜는 여호와의 날과 다가올 왕국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징벌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일에 대한 응징의 일부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보여준다.

오바댜는 자신이 본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그는 네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진술한다(1,4,8,18절). 탯포드(Tatford)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통일성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만, 그런데도 일부 비평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T. H. 로빈슨(Robinson)은 <이스라엘의 역사>(A History of Israel)란 책에서, 오바댜서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일곱 개의 분리된 신탁들의 모음이라고 제안하지만, 그 형식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일관된다. 그러므로 이 이론은 무시되어야만 한다. …오바댜서는 언어가 단순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며, 단어 사용은 적지만 생각은 풍부하다.” 오바댜는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을 때 드러났던 에돔의 증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통해서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높아짐을 예언한다. 또한, 두 나라의 도덕적, 영적 문제를 드러낸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펼쳐 보였고(호 3:1, 14:4),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 말했으며(욜 1:15, 2:1, 11, 31, 3:14), 아모스는 여호와의 정의(암 2:6, 3:10, 5:24, 6:12)를 다루었고, 오바댜는 에돔의 파멸을 우리 앞에 소개한다. 

선지자 오바댜

오바댜서는, 평범한 그의 이름 외에는 선지자나 그의 개인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오바댜”라는 이름은 “여호와의 종”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은 아합왕의 왕궁을 맡은 자의 이름이었는데, 그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사람이었다(왕상 18:3). 다윗 왕의 후손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다윗의 족보에 언급되었다(대상 3:21). 잇사갈의 자손이었던 이스라히야의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대상 7:1-3). 스마야의 아들이며 레위 사람으로, 느도바 사람의 마을에 살았던 사람의 이름도 오바댜였다(대상 9:14-16). 또 다른 오바댜는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의 자손인 아셀의 아들이다(대상 9:39-44, 대상 8:38과 비교해보라). 또한, 갓 사람으로 전사 중 오바댜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시글락에서 다윗 왕과 합류했고(대상 12:8-9), 스불론 지파의 지도자 이스마야의 아버지 또한 이름이 오바댜였다(대상 27:1619). 여호사밧 왕의 방백 중 오바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유다 성읍에서 가르치는 일을 위해서 파견되었다(대하 17:7). 요시아 왕 시대에 성전을 수리하는 감독관 중 한 명이 므라리의 아들인 오바댜였다(대하 34:8-12). 또 다른 오바댜는 아닥사스다 왕의 통치 기간 중 에스라와 함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스 8:1,8).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제사장 중 한 사람이자, 성문 문안의 곳간을 파수하는 문지기인 사람도 오바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느 9:38- 10:8, 12:25). 할로우(Harlow)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예언의 저자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11명의 저자와 같지 않다고 믿는다.” 하지만 라에치 박사(Dr Laetsch)는 “델리츠는 그가 유다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왕실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여호사밧 왕에 의해서 파견된 왕족과 동일 인물인 것으로 추정한다(대하 17:7-9)”고 말했다. 랍비 로젠버그는 “랍비들은 오바댜 선지자를 열왕기상 18장에서 아합 왕의 왕궁을 맡았던 행정관 오바댜와 동일시한다. 실제로 그들은 오바댜가 예언을 성취한 것은, 이세벨로부터 100명의 선지자들을 숨겨주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준 그의 공로로 돌리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탯포드는 “제롬은 오바댜 선지자가 아합의 행정관과 동일 인물이라고 확신했지만, 이 이론을 뒷받침할 실질적인 증거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오바댜 선지서를 쓴 선지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의 이름에서 추측해보건대, 그는 여호와를 충성스럽게 따르는 신실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오바댜서를 기록한 시기

오바댜가 살았던 시대를 확인하고 그의 예언의 정확한 날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다. 화인버그(Feinberg)는 “이스라엘을 향한 에돔의 적개심은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지속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오바댜서를 공부하는 학도들은 이 선지서의 시기를 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어쩌면 오바댜는 바벨론 포로 시기(BC 586년) 이전에 살았던 선지자였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이드(Boyd)는 “내부 증거(11-12절)는 오바댜 선지서가 기록된 날짜를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예루살렘이 최종적으로 정복당하는 시기(BC 597년) 근처로 확정하는 듯 보인다”라고 말했다. 모리쉬(Morrish)의 콘사이스 성경 사전은 “예언의 일부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당한 시기를 언급하는 듯 보인다. …에돔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에 바벨론과 연합군을 형성했다(12-14절). …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일을 도왔다는 이러한 암시는 오바댜의 예언을 기원전 587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라고 설명한다. 
탯포드는 “오바댜가 언급한 시기는 기원전 586년 갈대아인의 침략 시기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에돔에 대한 예언은 느부갓네살이 5년 후인 기원전 581년 그들의 나라를 초토화했을 때 적어도 부분적인 성취가 이루어졌다”라고 기록했다. 이 시기는 유다 왕 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재위 기간(BC 597-586년)이었으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통치했던 8년에서 19년 사이의 기간이었다(왕하 24:8-12, 렘 52:12-14). 오바댜서의 처음 일곱 구절과 예레미야서 49장 7-16절, 그리고 오바댜서 15,16절과 예레미야서 25장 28,29절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탯포드는 “일반적으로 오바댜는 초기 선지자로 알려졌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그의 글을 인용했다”라고 말한다. 예레미야서 1장 1-3절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유다의 왕 요시야 13년부터 유다의 왕 시드기야 왕 말기 사이에(BC 626-586년) 예언했다. 또한, 오바댜서를 시작하는 구절과 에스겔서 25장 12-13절 사이에도 유사점이 있다. 선지자 에스겔은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사로잡힌 지 5년부터(겔 1:1,2)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지 14년 후(겔 40:1), 즉 기원전 593-573년까지 20년 동안 에돔을 쳐서 예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겔 35장). 오바댜의 사역에 대한 정확한 날짜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오바댜의 예언이 기원전 597년에서 기원전 581년 사이에 선포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오바댜는 예레미야와 에스겔과 동시대 사람이었다.

오바댜서에 등장하는 두 민족

에돔은 오바댜서 예언의 주된 화제이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아모스, 말라기 등 6명의 선지자가 “세일산” 또는 “이두매”라고도 불리는 에돔에 대해 예언했다. 에돔 사람들은 야곱의 쌍둥이 형제인 에서의 자손이다. 태 속에서 서로 싸웠던 그들은 두 민족, 즉 에돔과 이스라엘 사이의 미래의 적대적인 관계를 예고했다(창 25:21-24, 27:41).

에서는 붉은 팥죽 때문에 “에돔”이라고도 불렸다(창 25:30). 이 이름은 그의 성격을 표현이자 또한 그의 후손들을 가리켰다. 에서는 그의 자아(육신)와 너무나 동일시되었기에 그것이 그의 이름이 되었다. 즉 물질주의적이고, 세속적이고, 반항적인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다. 에서의 원한은 그의 후손들에게로 이어졌다.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의 적대감은 영적인 진보를 방해하는 육체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는”(갈 5:17) 그림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내적인 싸움을 경험하며, 육체가 영적 성장을 방해할 모든 기회를 붙잡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롬 13:14). 그리스도인은 육신대로 살 빚진 사람들이 아니다(롬 8:12). 육신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일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육신은 항상 자아를 만족시키는 일에 힘쓸 뿐이기에, 하나님의 일에 낄 자리가 없다. 

에서와 그 자손인 에돔 사람들은 장자의 명분을 취한(창 25:31-34, 히 12:16) 야곱과 그 자손인 이스라엘 용서하기를 완강하게 거절했고 이스라엘에 대하여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과 밀접한 관계였지만, 그들은 숙적이었다. 그들의 계속되는 원한은 세 차례에 걸쳐서 뚜렷이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해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에돔 왕에게 그의 나라를 통과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청하건대, 우리에게 당신의 땅을 지나가게 하소서. 우리가 밭으로나 포도원으로 지나가지 아니하고 우물물도 마시지 아니하고 왕의 큰길로만 지나가고 당신의 지경에서 나가기까지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이다”(민 20:17)라고 구했다. 하지만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에돔 왕은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았다.” 이스라엘은 할 수 없이, 호르산으로 되돌아왔다. 그런 다음 그들은 에돔의 나라를 피하고자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여행했다(민 21:4). 훗날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이 통치하던 시기에, 에돔 사람이 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대하 21:8-10). 유다 왕 아마샤의 통치 기간에도(대하 25:11-16) 에돔과 더 큰 혼란이 있었다. 에돔 사람들은 또한 아하스의 통치 기간에 유다로 쳐들어와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갔다(대하 28:16-17). 그들은 또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오히려 그를 도와 협공을 했다(시 137:7). 에돔은, 오바댜, 예레미야(49:7-22), 에스겔(35장), 요엘(3:19)에 의해 표현된 하나님의 정죄에서 분명히 이스라엘에 대해 사악하고 보복적인 태도를 가졌다.

오바댜서의 개요

I. 에돔의 운명 선언(1-9절)
II. 하나님의 심판 목적(10-14절)
III.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축복(15-21절)
  (i) 전 세계적인 심판의 예고(15-16절) 
  (ii)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짐(17-21절).

오바댜의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에돔인들의 무자비한 증오를 보여준다. 이 예언서는 에돔의 멸망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주님의 왕국이 설립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결말은 주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을 실행하는 것이었으며(창 12:3, 27:29과 비교하라), 에돔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적대적이었던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는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며 이스라엘을 그들의 땅에 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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